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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이란?(1)

이준호 | 2016.07.14 20:39 | 조회 4106

C. H. 매킨토쉬

"죄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입은 자는 복있는 자로다!"

이 말은 실로 축복의 말입니다. 죄사함이 없다면 축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는 것은 참 행복의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 없이 행복하다는 것은 마치 어느 때 영원한 구덩이에 빠질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제거되었다는 하나님의 확증을 소유하기 전에는 확고한 행복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에 대한 불확실은 항상 죄의 무거운 짐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틀림없이 근본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다 지고 가셨나 아니면 아직도 마음(양심)에 남아 있느냐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호한 의혹 상태에 있다면 이것은 너무나 비참한 것입니다.

이 죄사함에 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독자들에게 아주 정확하고 확실한 개인적 질문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실하고도 안정된 확증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내가 이 질문을 초두부터 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설교도 하면서 자기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믿는 것은 주제넘은 것으로 고집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 용서받았다는 귀중한 사실에 대해서 항상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겸손의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는다는 추상적인 것이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다음의 성경 구절 앞에서 문외한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6-4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골 1:14)

여기서 우리는 "용서"와 "죄사함"과 "죄"라는 말이 주의 이름으로 설교된 것을 봅니다.(이 단어들은 위의 3개의 성경 구절에 똑같이 들어 있다.) 그리고 위의 말씀을 듣고 믿은 자들은 다 죄사함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모든 족속"의 범주에 속한 에베소, 골로새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요, 그 내용은 예수의 이름으로 얻는 죄사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복음을 믿고 "죄사함"을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제넘은 것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던가? 아니면 "죄사함"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 경건하고 겸손한 것이었던가?

사실 그들은 사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즉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외인이요 손"이었습니다. "악을 도모하는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다이아나 신"에게 의심 없이 무릎을 꿇고 절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우상과 악한 행습에서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사함"의 말씀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들은 진실이었습니까? 아니면 거짓이었습니까?

이 말씀들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까?

그것은 모두 신화 속의 꿈같은 그림자였습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단 말입니까?

그 말씀에는 죄사함에 대한 확실성도, 정확성도, 확고 부동한 것도 없단 말입니까?

이 질문이야말로 아무도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로부터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들인 것입니다.

만일 참으로 죄사함에 대해서 깨우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사도 시대에는 어떻게 그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까? 만일 1세기에 깨우칠 수 있었다면 지금 19세기에는 왜 그 사실을 깨우칠 수 없단 말입니까?(C. H. 매킨토쉬는 1820-1896년대의 사람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 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4-8)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어느 때나 죄사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고히 알려져 왔습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 구절의 하나만으로도 죄사함 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거짓 가르침을 누르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신기하고도 귀한 축복을 깨달은 사람들을 성경에서 발견한다면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가 성경을 열고 각종 악습에서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은 것을 발견한다면 아무리 사악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확실성으로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 다윗, 히스기야, 중풍 병자 등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사함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주제넘고, 추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그들의 마음 속에서 죄사함에 대해서 의심했다면 그것을 겸손하고 경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어떤 이들은 그들을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에 관계되는 한 그들이 특별한 경우였던, 아니였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성경 속의 그들도 자신의 죄사함에 대해서 확실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틀림없이 반박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감정과, 연약성과, 과오와, 죄지을 가능성에 쉽게 영향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글 쓰는 입장에 있든, 독자의 입장에 있든 온전한 죄사함의 복음을 듣고 기뻐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귀중한 문제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고수하는 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성경적 근거도 없이 고집합니다.

성경에 있는 이 모든 예들이 우리에게 선례로 제시 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경우라고만 한다면 이것은 진실일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가. 아브라함의 경우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고 했습니다.(창 15:6)

성령님도 역시 우리가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인데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설교를 듣는 자들에게 죄사함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전했을 때 그 내용의 진의가 무엇이었느냐입니다.

그들은 죄사함에 대해서 확신 할 수 없다는 사상을 열심히 전달하려고 애썼을까요?

안디옥 회당에서 바울이 청중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복음)을 전합니다" 라고 했을 때 아무도 자신의 죄사함에 대해서 확신 할 수 없다는 사상을 전한 것입니까? 만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염려가 남게 된다면 어떻게 그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아무도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사도들의 전체 설교는 뒤집혀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의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알 것은 아무도 자신의 생애 동안에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는지, 못받았는지를 알 사람은 없는 이것이라"

사도들의 전체 설교와 가르침에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까?

사도들은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난 구세주를 믿는 믿음의 적절한 결과로 얻는 죄사함을 가장 확실하고 충실한 방법으로 어디서나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교사들이 너무나 강하게 주장하는 가르침은 사도들의 그것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즉 우리 모든 죄의 온전한 용서를 믿는다는 것은 위험한 추측이라는 견해라든지, 영원한 의혹 속에서 사는 것이 절대자 앞에서 겸손한 태도라는 주장이 곧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하고 평안한 안식을 믿고 즐길 수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없습니까? 또는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맡길 수 없는 것입니까? 소망 없는 혼돈 속에 영혼을 버려두는 것이 복음의 유일한 효과일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나는 믿지 못합니다. 성령님은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시지만 나는 그 증거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과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멸시하는 것과 성령님의 기록을 믿지 못하는 것이 경건과 겸손이라면 이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이런 것이 복음이라면 믿음으로 화평과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그때부터 안녕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면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알게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7-79) 라는 말씀은 그때부터 헛된 것입니다.

만일 이 "구원의 소식"을 아무도 알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복음이 주어졌다는 말입니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문제는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속여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즉시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여 왔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과 죄를 제거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확고히 믿을 수 없다고 핑계될 수 있을까요?(성경을 사람의 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역자 주)

인간은 스스로 속여왔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기가 두렵다. 인간은 타인을 속여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속일 것이 두렵다.

이것은 흔히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때때로 율법과 육적 경건주의가 사람들에게 입힌 외식적 옷을 벗겨서 그들의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리를 알고, 교단이 인정하는 건전하고 계몽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옹호자로 자처하며 나설 때 그들의 주장을 흠없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해 보는 것도 우리의 임무입니다. 만일 그들이 주장하기를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고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ㅈㅅㄴ, 인간이 생활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상의 것은 혹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나라에 갈지도 모른다는 연약한 소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호히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그들의 가르침을 배척해야만 합니다.

거짓 신학은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확신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요?

전자는 어두운 의혹과 두려움을 주지만 후자는 하나님의 확증을 심어 줍니다. 전자는 우리를 우리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게 하지만, 후자는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하게 합니다. 어느 쪽에 가담할 것입니까?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볼 때 그 안에는 아무도 영원한 구원을 확신 할 수 없다는 사상들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나는 단호히 성경에는 그런 사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성경 어느 부분에서나 분명한 방법으로 모든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서와 영접에 대한 가장 밝은 확신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묻겠습니다. 성경에 있는 가장 완전한 확증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완성하신 사역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님에 의해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의 현재 다루고 있는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독자들이 지금 이 시간 그리스도께서 해주시는 한 안전하다는 사실을 소유할 수 있다는 충분한 확증을 갖고, 이 연구를 마치기 바랍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죄사함에 대한 확증을 즐길 수 있다면, 왜 나의 독자들이라고 해서 그와 똑같은 확증을 즐길 수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입니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죄사함에 관한 복음을 단순히 믿기만 하면 그때 나는 용서받은 것이요, 의롭게 된 것이요, 주님께 영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나의 모든 죄를 그가 갖고 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그분께 담당시켰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죄를 지고,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 점의 죄도 없이 하늘로 오르신 것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의 모든 죄 때문에 형벌을 받으신 그분이 지금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계신다면 나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를 공격하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죄를 짊어진 그분 그리스도에게 떨어졌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그분이 받았기에 나는 부활과 영광을 받으신 구세주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영원한 용서를 받고 영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나의 독자들이여, 이것을 믿습니까?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습니까?

타락된 죄인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 진실된 마음으로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였습니까?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의롭게 된 것입니다. 영접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진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불쌍하고 연약한 피조물이요, 매 순간마다 거역하는 악의 성품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의 생명이요, 당신의 지혜요, 당신의 의요, 당신의 거룩이요, 당신의 구속이요, 당신의 모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위해서 하늘에 항상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죽었고, 계속 깨끗이 보존하기 위해서 살으셨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죽음이 하실 수 있는 한 깨끗해 졌고, 그분의 생명이 당신을 보존하는 한 깨끗하게 보존되어집니다. 그분은 스스로 당신을 위해서 책임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변화시킨 상태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을 보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분과 하나가 된 것을 보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두운 율법과 외식주의와 거짓 신학의 복도를 걷지 말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것들은 여러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죄를 짊어지고 잘못 인도된 불쌍한 심령들의 한숨과 통분과 함께 뒤범벅이 되어 들려 온 소리들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충만한 기쁨으로, 부활하시고 영광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선 것을 안다면, 지상에서의 당신의 전 생애를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하늘에 예비 된 영화로운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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